전쟁은 목표가 명확할수록 끝이 보인다. 하지만 이스라엘 대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단순했다. 세 가지 목표를 나열했지만, 정작 어디서 멈춰야 할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라는 것이다.
대사가 제시한 이란의 핵개발 저지와 탄도 미사일 저지는 기술적 목표다. 이것들은 측정 가능하다. 하지만 세 번째 목표는 다르다. '이란 시민의 자유 회복'이라는 인도주의적 표현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정권 교체인가, 체제 변화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대사는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종료 조건이 불명확한 것은 위험하다. 목표가 모호하면 전쟁은 자기 목숨으로 계속된다. 마치 끝을 모르는 수술 같다. 의사는 환자에게 '합병증이 없을 때까지'라고만 말한다.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피는 계속 흐른다. 기간은 늘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라는 표현의 반복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이 작전을 진행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얽힌 구조 게임이다. 개별 국가의 자기방위를 넘어 더 큰 질서의 재편을 노린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중동의 패권 구도를 재정의하려는 시도 말이다.
명확한 목표는 전쟁의 종료를 보장한다. 하지만 목표가 추상적일수록 전쟁은 영속한다.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언제 끝나는가'가 아니라, '왜 이 목표들은 동시에 추구되는가'. 핵개발 저지와 미사일 저지는 방어 차원이지만, 이란 시민의 자유는 공격 차원의 목표처럼 들린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정당화하려면 어떤 프레임이 필요할까. 그것이 바로 '인도주의'가 아닐까.
대사의 말은 기술적으로는 일관성 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질문을 남긴다.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의 체제 변화를 군사 작전의 목표로 삼을 권리가 있는가. 자기방위와 타국의 정권 교체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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