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행동학자 최재천이 말하는 훈육의 진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체벌은 훈육이 아니다. 체벌은 권위를 드러내거나 부모의 감정을 분출하는 행위일 뿐이다. 훈육은 다르다. 훈육은 대상이 더 훌륭한 개체가 되도록 돕는 과정이다.
침팬지 엄마가 새끼에게 견과류 까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성급한지 드러난다. 침팬지 엄마는 옆에서 자신의 먹이를 먹을 뿐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새끼는 몇 번이고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학습한다. 인간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 즉시 설명하고, 직접 손을 잡고, 심지어 깨서 먹여 준다. 우리는 학교라는 것을 만들었다. 자연에는 없는 학교다.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빨리 가르치려는 인간의 성급함의 결과물이다.
최 교수가 아들을 키우며 깨달은 것은 명확했다. 부모가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TV를 두지 않고 부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인 아들은 자연스레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말로 '책을 읽어라'는 것은 훈육이 아니다. 입으로는 요구하면서 자신은 다르게 사는 것은 폭력이다. 훈육은 행동이다. 아이가 보고 배우는 것이 진짜 훈육이다.
그렇다면 방치는 어떻게 다른가. 완전한 방목은 아이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도 막지 않는다. 최 교수가 말하는 따뜻한 방목은 개 목줄과 같다. 산책할 때는 충분히 늘어나게 놔두지만, 차가 올 때는 재빨리 잡아채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아이가 당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이가 자유롭다고 느낄 때, 실제로는 안전망이 있을 때, 그것이 훈육이다.
부모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부모 되는 것처럼 행복한 것도 없다.
당신은 지금 아이에게 입으로만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완전히 놔두고 있지는 않은가.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은 그 사이의 가느다란 선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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