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법을 범한다. 예전보다 더 많이, 더 뻔뻔해졌다. 촉법소년 수가 2년 사이 27% 늘었다는 통계는 숫자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범죄 자체가 아니라 범죄 앞에서 느껴야 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해당 영상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인구가 줄어드는데 청소년 범죄는 늘어날까. 답은 간단하지 않다. 촉법소년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는 95%까지 모였지만, 나이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규범은 어디서 왔는가. 과거에는 할머니, 이모, 삼촌 같은 어른들이 일관된 규범을 전달했다. 그들이 사라졌다. 핵가족화, 맞벌이, 학원 전전, 공교육의 추락. 이것들이 쌓이니 아이들 앞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학교도 집도 사회도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규범이라는 게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지킬 수도, 안 지킬 수도 있는 것.
더 깊은 층이 있다. 자유주의 사회로 전환하면서 자유 자체를 감당할 훈련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끊임없는 자극으로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여유가 없어졌다.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만 인정을 받으려 한다. 그 공동체에서 폭력이 인정받는 수단이 되면 헤어나올 수 없다.
해당 영상이 지적하는 것은 형벌이냐 교육이냐의 문제다. 미국식 엄벌주의는 사회의 일부를 완전히 누락시켰다. 밤 열 시 이후 거리에 나갈 수 없는 도시들. 한국이 아직 그렇지 않은 것은 누락된 사람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벌로만 가면 어떻게 될까.
독일의 원칙은 명확하다. 교육이 형벌에 앞선다. 교육이 더 이상 효과를 낼 수 없는 지점에서만 형벌이 시작된다. 이것이 일관된 철학이다. 한국이 나이를 낮추면서 동시에 상담 교사를 보호할 법률도 만들지, 초범을 다르게 관리하지, 예산도 마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법의 내적 일관성이 사라진다. 형벌만 강해진다.
핵심은 이것이다. 아이들이 저지른 작은 범죄마다 회복적 정의를 적용할 수 있는가. 가해자가 명확히 인식하고 재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보일 때 비로소 피해자의 상처가 회복된다고 믿을 수 있는가. 아니면 처벌만 강하고 사회 복귀 후에는 낙인찍힌 채로 내버려둘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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