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효도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미 번식을 마친 부모를 돌보는 일은 유전자 전파에 무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그것을 했고, 지금도 한다. 본능이 아닌 인지로 만들어낸 이 행동 속에 인간다움이 있다.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효도는 손해다. 이미 번식을 마친 노부모를 돌보는 일은 자신의 유전자 전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재천 교수는 단언한다. 효도는 진화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했다. 지금도 한다.

양의 어미와 인간의 어미를 비교하면 이 역설이 선명해진다. 양은 자연분만 과정의 호르몬 없이는 새끼를 알아보지 못한다. 본능의 회로가 작동하지 않으면 모성애도 없다. 인간은 다르다. 제왕절개로 낳든 남의 아이를 받든 어머니는 인지능력으로 그 회로를 우회한다. 옥시토신 없이도 사랑한다. 생물학적 방아쇠가 없어도 마음이 움직인다. 양은 순수 본능의 노예다. 인간은 본능을 버렸다.

영장류 사회에서 인간만이 하는 일이 있다. 나이 든 부모에게 매일 먹을 것을 챙기고 따뜻한 밥을 제일 먼저 건넨다. 침팬지도 보노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지시하지 않는 일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해낸다. 유교 사회가 효를 강조한 이유는 단순했다. 강조하지 않으면 저절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 만들어진 행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유전자 수준의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침팬지 플린트가 어미의 죽음 앞에서 밥을 먹지 않고 따라 죽어갔을 때, 진화생물학자도 그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유전자의 손을 떠난 이후의 세계다. 개체 수준의 행동이 펼쳐지는 영역이다.

효도를 받으려면 돈이 아니라 관계가 필요하다. 자식과 어떻게 지내왔는지가 전부다. 자주 찾아뵙고 전화하고 시간을 함께하는 것. 그것이 진화가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실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것이 우리를 동물과 다르게 만든다.

부모를 돌보는 행위는 진화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그 손해를 감수한다. 아니,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전자의 계산식으로 잴 수 없는 영역에서 우리는 산다. 그곳에서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본 리뷰는 해당 유튜브 영상의 핵심 논지를 독자적으로 해석·재구성한 것으로,
원본 영상의 저작권은 제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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