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바꾸면 세계가 바뀐다. 1400년 전 원효는 이것을 알았다. 당시 신라의 학자들은 불경 해석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정통성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었다. 그들은 각자 옳다고 확신했고, 상대를 거짓말쟁이라 믿었다. 원효는 이 교착을 풀기 위해 다른 방식을 택했다. 설득이 아닌 이해였다.
원효의 방법을 코끼리 비유로 풀어보자. 한쪽은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긴 것'이라 말한다. 다른 쪽은 귀를 만지고 '넓은 것'이라 말한다. 둘 다 거짓이 아니다. 보는 부분이 다를 뿐이다. 원효는 상대의 주장이 왜 옳은지를 먼저 설명했다. 그들이 보는 코끼리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 다음에야 다른 관점의 존재를 보여줬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들은 더 넓은 진실을 본 것이다.
원효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하나의 교리가 아니다. 질문이다. 당신이 본 코끼리가 전부인가. 당신의 증거가 세상의 모든 증거인가. 지금 당신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절대적인가. 혼란의 시대에 원효는 싸우지 말고 돌아다니라고 했다.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것을 보라고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자동으로 부드러워졌다. 편견을 내려놓았다.
원효 자신은 파계승이었다. 스님의 옷을 벗고 광대처럼 춤을 췄다. 술을 마시고 욕을 뱉었다.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함께했다. 그것은 설총이라는 한반도 최고의 학자를 낳았다. 원효는 위대한 이중성의 인물이었다. 거대한 체계를 만들면서 그 체계를 스스로 박살 냈다. 틀에 갇히지 말라고 외쳤다. 틀을 만들면서 동시에 그 틀을 깨뜨렸다.
1400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코끼리를 각각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더 많은 증거를 모으고 더 큰 목소리로 주장한다. 원효의 질문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라 절박함이 되었다. 당신의 코끼리와 내 코끼리가 같은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것이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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